왠지 뭔가 있을 것 같은 제목이지만, 또 꺼려지는 제목이다.
왜? 나는 ‘장남’이기 때문이다.
차남들의 장점, 이를테면 도전 정신 같은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어느 정도는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인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노골적으로 ‘차남들’의 ‘세계’에 대한 책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물론 핑계이고, 또 속 좁은 행태임에 분명하다. (내가 장남임을 인식하는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사실 참 많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내가
장남이란 걸 의식할 때가 있다. 웃기는 일이긴 하다. 그게
뭐라고.)
그러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를 읽고 이기호의 소설을 더는 안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차남들의 세계사』는 이미 알고 있던 작품이었다.
여기서 차남들이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 ‘차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인과 아벨’의 ‘아벨’. 바로 그 차남이다. 힘을
가진 한 명의 장남과 그 힘에 두려움을 갖는 차남들. 바로 그 차남들이다. 두려움에 굴종하는 차남들. 그러나 이제는 일어서야 할 차남들. 새로운 역사, 세계사를 써야 하는 차남들. 그러니까 나도 그 차남들 중 하나일 수 있는 것이다(물론 분명한
것은 아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훨씬 뒤에 나온다. 그것도 안기부 요원이 꾸며낸 편지에서. 그런데 그 편지의 내용이
그 안기부 요원의 지향점과 정반대이면서 이 소설의 제목마저 가져온다는 점은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이
소설의 묘미이기도 하다.)
1982년의 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1982년에 무슨 일이
있었나. 나의 개인적 기억을 되새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이른바 ‘부미방’으로 불리운,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있던 해이다. 그들이 ‘광주사태’라 불렀던, ‘광주민주화운동’, 내지는
‘광주항쟁’에서 미국의 본질적 책임을 규탄하면서 문부식 등이
부산미문화원에 불을 지른 사건이다. 그런데 그 사건은 부산이나 서울 같은 데서 마무리되지 않았다. 원주. 전혀 예상치도 못한 지방 소도시로 불똥이 튀었다. 문부식 등은 평소 존경하던 천주교 원주대교구장이던 지학순 주교를 찾아갔고, 그들을
최기식 신부가 받아주었다. 자수를 시킨 게 바로 최기식 신부였지만, 결국
최기식 신부는 공안 당국에 잡혀간다. 최 신부만이 아니라, 심지어
학생들에게 밥을 해준 이도, 학생들이 숨은 방에 보일러를 때준 보일러공도 잡혀가는 판국이었다. 어이없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서운 시대였다.
이기호는 그 때 열 살 소년이었다. 원주에 살고 있었다. 열 살 소년은 수십 년이 지난 시점에도 잊지 않고 그 폭압의 시절, 혹은
진지하게 우스꽝스러운 시절을 증언한다. 문부식이나, 최기식
신부는 그저 배경으로 삼고, 일자무식(말 그대로 문맹인) 1년차 택시기사 나복만이라는 사내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다. 국가보안법보다(그게 어떤 법인지도 모르므로) 도로교통법이 훨씬 중요한 그가 이 어마어마한
사건에 휩쓸려가는 모습을 능청스럽게 엮어내면서 그 시대가 비극이었다고, 아니 차라리 희극이었다고 쓰고
있다.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최소한의 양심마저, 최소한의 도덕마저 저버리게 만들어버린 그 시대의 폭주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고, 그저 시대가 그랬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단지 나복만이라는
사내의 비극으로만 얘기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얽혀 있었다. 가해자,
피해자 누가 더 비극적으로 끝날 지 모르는 것도 이 소설의 메시지이자,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인과응보는 우리의 바램이지만, 늘 그러는 것이 아니란
걸 정말 잘 알기에 그렇지 못한 상황에 우리가 분노하는 게 아닌가.
쉴 새 없이 읽었다. 너무 비감(悲感)하지 않은 문장이 좋았다. 그게 더 비극이자 희극인 이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적합했다. 이기호의 장점이다.
광기의 역사 속에서 파괴되는 차남들의 삶과 꿈
이기호 특유의 걸출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깊이 상처입은 사람의 쓸쓸한 농담 같은 소설
이기호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차남들의 세계사 가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계간 세계의 문학 에 2009년 가을부터 2010년 겨울까지 연재됐던 수배의 힘 이 제목을 갈아입고 나온 것이다. 얼떨결에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에 연루되어 수배자 신세가 되고 만 ‘나복만’의 삶을 이기호 특유의 걸출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으로, 광기의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의 삶과 꿈이 어떤 식으로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차남들의 세계사 는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 에 이은 그의 ‘죄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사과는 잘해요 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죄의식을 다뤘다면, 차남들의 세계사 는 19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군사정권 아래 뜻하지 않게 수배당한 인물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하여 악전고투하는 이야기를 통해 개인과 국가 사이의 죄와 벌이라는 문제를 다룬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이런 무거운 소재 앞에서도 이야기꾼 의 어조와 호흡을 절묘하게 운용하면서 시종 ‘희비극적’이라고 해야 할 어떤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 이기호 소설의 특징 이라고 말할 만큼, 이기호 소설의 진짜 매력은 유쾌한 화법 뒤에 숨어 있는 슬픔과 환멸이다. 그는 부조리한 삶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경쾌하고 유쾌하게 담아낸다. 또한 재기 넘치는 문체, 선명한 주제의식, 매력적인 캐릭터, 유머와 익살, 애잔한 페이소스를 통해 뜨거운 연민과 공감을 이끌어 낸다.
이야기가 현실을 뛰어넘기 어려운 시대다. 매일매일 경악할 만한 사건사고가 뉴스를 채운다. 그런 소설 같은 현실과 당당히 겨루는 희대의 이야기꾼이 있다. 우리의 기호(嗜好)에 딱 맞는, 이 시대의 특징적인 기호(記號)들을 깊은 통찰력과 유머로 풀어내는 이야기꾼 이기호. 소설이 재미없다고? 한국문학이 위기라고? 이기호를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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