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장준하 평전


15-11-16. YES24장준하 선생의 평전이다. 신실한 기독교인이자 무장독립항일투사이며 독재에 항거한 지식인.이 정도밖에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금지된 동작을 맨 먼저 시작한 혁명가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정치적으로 우파 성향을 띠고 있다. 간혹 나를 오인하여 좌파다, 진보다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치학적으로 나는 우파에 가깝다(물론 경제학적으론 좌파쪽이다). 정치학에서 우파와 좌파를 나누는 주요한 기준 중 하나가 민족 vs 세계화인데 나는 민족주의자에 가깝고, 국가 vs 무정부라는 선택지점에서도 나는 국가주의를 택하기 때문에 전형적인 우파라고 할 수 있다.장준하 선생도 이와 비슷한 노선을 걸었던 인물이다. 그는 한때 한민족인 북한을 적대시했을 만큼 공산주의를 열렬히 반대했고, 젊은 시절에는 민족 독립을 위해, 노년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진정한 애국보수 였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애국보수란 말은 정말로 이런 분들을 위해 존재하는 단어인데 자칭 애국보수라는 쓰레기들이 날뛰는 현상은 보기만 해도 화가 난다) 재미있는 점은 장준하 선생의 일생이 박정희와 대척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잠깐 비교해보면 이렇다.-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출신이었으나, 장준하는 일본군을 탈출하여 6,000리 길을 걸어 광복군에 가입했다.- 박정희는 남로당에 가입했다 동료를 배신하여 살아남았으나, 장준하는 평생을 민족독립과 애국을 위해 살았다.-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공포하고 긴급조치를 취하는 등 국민을 속박했으나, 장준하는 잡지 <사상계>를 통해 국민의 정신을 자유케하고자 노력했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통해 독재를 했으나, 장준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박정희는 굴욕적인 한일정상회담을 개최했으나, 장준하는 이를 반대한다.- 박정희는 마지막까지 국민을 탄압하다 죽었으나, 장준하는 마지막까지 독재에 항거하다 암살당한다.박정희의 독재정치로 경제를 살렸다는 주장은 논란과 반박 및 재반박이 너무나 많으니 차치하자. 중요한 건 그가 정치적으로 어떤 견해를 가졌느냐는 점이다. 박정희는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을 파병하고,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굴욕적인 한일정상회담을 개최했다(만주장교로 살았던 친일행적을 빼도 이 정도다). 이에 비해 장준하는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고 독립 이후에는 민족계몽운동, 독재항거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니, 박정희의 공과 실은 알아도 장준하의 실마저 아는 이는 너무 드문 현실이다. 그의 조강지처 부인인 김희숙 여사 또한 이렇게 썼다.억울할 만큼 남편의 한평생은 늘 핍박받는 투쟁의 불연속선이었기에 가슴이 저린 게 아니라, 남편에게 고통을 주고 그 대신 잘 사는 사람들이 계속 죽은 남편을 바른 역사에서 지워버리려 할 것이 마음 아프다._김희숙, <수기처럼 돌베개를 베고>흔히 기억은 권력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억을 제한적이나마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지만 국가 혹은 공동체의 기억은 그렇지 못하다. 권력을 가진 자만이 기억을 조작할 수 있고 또 마음대로 기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장준하 선생이 자꾸만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장준하 선생이 얼마나 나오는 지는 알 수 없으나, 박정희도 중앙정보부를 통해 감시하고 또 암살까지 했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 학생들 사이에 거의 잊혀진 인물이라는 점은,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말해준다. 지금도 이러한데 국사교과서르 국정으로 가자는 주장은 정말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조국애를 몰라서 조국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고, 조국을 귀중하게 여기지 못하여 우리의 선조들은 조국을 팔았던가. 우리는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련다. (157p)장준하 선생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를 자신의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강제징용을 당할 때, 위안부로 끌려가는 후배들을 볼 때, 일본군을 탈출하여 임시정부를 찾아갈 때, 조국을 빼앗긴 그 설움은 얼마나 컸을까. 그는 이완용 같은 매국노처럼 호의호식하기보다는 어려운 길을 걸었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완용은 알아도 장준하는 알지 못한다. 못내 슬픈 일이다.신념이란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고 구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생명력이란 것을, 나는 체험을 통해 확신했다. 나의 신념은 앞으로 계속 날 지배하고, 또 내가 속해 있는 단체를 지배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내가 사랑하는 내 나라 도 나의 신념을 필요로 할 것이다. (215p)신념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다. 개도 주인을 따른다곤 하지만, 개가 어떤 신념을 갖고 주인을 따른다고 보긴 어렵다. 그건 그저 충성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신념을 가진 인간은 다르다. 맹목적인 충성과는 다른, 의지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바로 그렇기에 세상은 신념 있는 사람들로 이끌려야 한다. 그리고 그 신념은 당연히 바른 신념이어야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이라는.민족통일·민주사상·경제발전·신문화창조·민족자존을 내세우는 편집방침은 한 교양지의 차원을 넘어, 국정의 지표로서도 합당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343p)장준하 선생은 <사상계>를 창간하면서 5개의 편집방침을 내세웠는데, 그것은 민족통일·민주사상·경제발전·신문화창조·민족자존이다. 매우 간단하고 당연해보이는 편집방침이지만, 사상계가 종말을 고한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과연 무효한 편집방침이 되었는지 되뇌어본다. 아직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민주주의는 비추 버튼으로 전락했으며 문화는 기껏해야 서양을 따라가는 수준이고 적어도 한·일관계에 한해선 여전히 굴욕적인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그나마 달성한 건 경제발전 정도. 그러니까 <사상계>의 편집방침은 여전히 유효하다.내 롤모델은 본래 C.S. 루이스·이청준 선생이었다. 글 잘 쓰기로 유명했던 그들처럼 나 또한 글을 잘 쓰고 싶기에 롤모델로 삼았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장준하 선생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사상계>를 창간한 편집장이자 일제와 독재에 맞서 싸운 투사. 그의 삶은 알면 알수록 배울 점이 많다.
故 장준하 선생의 성장 과정을 다룸으로써 그의 사상의 형성과 틀을 보여준다. 저자는 장준하 선생이 광복군으로 일제와 맞서면서 그리고 해방 뒤 김구 선생과 함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하면서 사상의 폭을 넓혔고, 이러한 사상의 성숙은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주의 투쟁과 민권 투쟁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이 책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장준하 선생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지난 시절의 암울했던 유산을 추종하는 정치인들, 언론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고 있다.

제1장 풀리지 않는 의문사, 반생의 위업
광복군으로 귀국 30년 뒤 의문사
외상 없는 시신
‘실족사’로 볼 수 없는 10가지 의문점
‘거사’ 앞두고 신변정리
‘금지된 동작’을 맨 먼저 시작한 혁명가
장준하 장남이 털어놓은 의문점
사생결단 ‘거사’ 앞두고 모살당했을 수도
신구합동의 명동성당 장례식
약사봉 계곡의 진혼곡
부재의 혼

제2장 의주에서 태어나 삭주에서 자라
역사의 길, 현실의 길
정도를 택한 의인의 길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첩첩산중의 청계동 마을로 이사
신성중학교에서 사회의식에 눈떠
평생의 동반 ‘함 도깨비 선생’

제3장 가정이 어려워 진학 포기하고 교직생활
신성학교 교사로 3년 재직
동맹시위 벌여 일경과 맞서
창공을 바라보는 소년
일본 유학생활
춘원·육당의 학병지원 강연
제자 김희숙과 결혼

제4장 일본군 탈출, 대장정에 나서
중국 망명 위해 일본군에 지원
‘잔반불식동맹’ 결성
사활을 건 탈출
모험에 나선 4명의 동지들
쫓고 쫓기는 질주
김준엽과의 만남
일본군의 포로교환 요구
불로하에서 부른 애국가

제5장 임천군관학교 활동 3개월
팔로군의 기습
한치룡 사령관의 전사
중국군 사령관의 타락상
임천분교에서 만난 김학규 주임
대원들의 교양지 등불 제작
열악한 생활 환경
임시정부 찾아 6000리 장정에 나서다

제6장 파촉령 넘어 중경임시정부 도착
부패한 중국군
노하구에 도착
파촉령을 넘어서다
꿈에 그리던 임시정부
임정요인들의 파벌싸움
임정청사에 폭탄 던지고 싶다
등불 속간
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되다

제7장 OSS 대원에서 환국하기까지
서안에서 OSS 훈련받아
새 잡지 제단 창간
국내진공정진대에 선발
거듭되는 반전 또 반전
광복군으로 여의도공항 착륙
일본군과 대치하다 중국으로 돌아가
김구 주석과 선발대로 환국
환영객 없는 귀국
김구 주석 연설문 작성

제8장 해방정국에서 백범의 비서로 활동
해방공간에서 김구 주석의 행보
4당 거두의 연쇄회담 준비
임시정부 환국봉영회
지도자들의 처신에 환멸
김구 곁을 떠나 이범석의 족청으로

제9장 시대의 양식 사상계 창간
모든 혁명은 이론서에서 시작된다
사상 발행하다 사상계 창간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부인이 옷가지 팔아 제작비 부담
혼자서 만든 사상계 초창기
사상계 를 향한 집념
한청빌딩 시대

제10장 사상계 , 정론지로 자리잡아
편집위원 체제 갖추다
사상계 의 편집방향과 지침
사상계 헌장
들사람 함석헌 ‘발굴’
낙양의 지가 올린 <할 말이 있다>
‘신인문학상’ ‘동인문학상’ 제정
친일지식인 ‘최남선’ 기념호 발행

제11장 반이승만 투쟁과 4월 혁명
함석헌의 첫 필화사건
이승만 정권의 탄압
백지 권두언
어용교수의 글, 불순광고 게재 거부
4.19혁명기의 사상계 깃발
‘민권승리’의 기념호
전국순회문화강연회와 사상문고 발행

제12장 제2공화국 참여와 반군정 투쟁
혁명과업에 대한 인식
국토건설본부의 책임 맡아
박정희 주도의 5.16쿠데타
정론정신 회복, 반군정 투쟁 벌여
함석헌 선생과 함께 체포
‘부패언론인’이란 오명
사상계 고사작전에 맞서
김종필과 민족주의 논쟁
박정희 사상문제에 초점 맞춰

제13장 사상계 의 수난과 반독재 투쟁
굴욕회담 반대투쟁
정치보복 세무사찰 당해
박정희는 밀수왕초다
‘정치참여’ 의지인가 숙명인가
정계진출, 국회의원 옥중당선
사상계 발행권 부완혁에게 넘겨
사상계 몰락의 배경
국회의원 장준하의 활동

제14장 사활을 건 박정희와의 싸움
영구집권을 향한 친위쿠데타
<7.4남북공동성명> 지지선언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
반유신 저항운동진영 결집 나서
100만인 서명운동
긴급조치 제1·2호 발동, 세 번째 구속
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재야 대통령’의 재야 지도자로

제15장 선생의 발자국 있으매 - 추모·회상
친일파 세상에 설 땅 잃은 광복군
민족의 동량을 너무 일찍 잃었다
동양의 선비, 서양의 인텔리겐치아
청렴·선공후사의 표상

부록
1. 장준하 선생 연보
2. 수기처럼 돌베개를 베고
3. 민주당 사인규명조사위원회 보고서
4.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상규명 불능’ 판정